쉬는 날인데 왜 더 바쁜 기분이 들까요.
영화도 하나 보고, 맛집도 가 보고, 미뤄 둔 정리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하루를 채우고 나면 쉬었다기보다 일을 하나 더 마친 느낌이 남기도 해요.
쉬는 시간에도 점수를 매기게 되나 봐요. 오늘 알차게 보냈나, 아깝지 않았나. 그 질문이 붙는 순간 쉼은 숙제가 돼요.
달력을 보면 빈칸이 불안할 때도 있어요. 빈칸이 있으면 뭔가 채워 넣어야 할 것 같고, 채우지 않으면 게으른 사람이 된 것 같고요. 그런데 빈칸은 원래 비워 두라고 있는 칸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에는 의외로 이런 일이 생겨요.
- 창밖을 보다가 구름이 모양을 바꾸는 걸 알아채요.
- 어제 들은 말이 문득 다시 떠올라요.
- 한동안 연락 못 한 사람 이름이 생각나요.
- 좋아하던 노래 한 소절이 입에서 새어 나와요.
이게 몸이나 마음에 좋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비어 있어야 들어올 자리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일정이 빽빽하면 노래 한 소절 끼어들 틈이 없으니까요.
멍하니 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쓸모를 묻지 않는 쪽이 저는 편해요. 뭘 위한 시간인지 따지기 시작하면 그것도 일이 되거든요. 그냥 앉아 있다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면 돼요.
그렇다고 늘 이래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바쁜 날은 바쁜 대로 지나가요. 다만 하루에 한 군데쯤은 무엇도 올려 두지 않은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의자 하나 놓을 만한 작은 자리면 돼요.
"쉬었다"고 말하려면 뭔가 근거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앉아 있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영수증도 사진도 남지 않는 시간이 있어도 괜찮아요.
길게 낼 필요도 없어요. 커피가 식기를 기다리는 시간, 버스 정류장에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어 두는 시간 정도면 충분해요. 오 분이어도 그 오 분은 온전히 내 몫이에요.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는 시간이에요. 누구에게 보고할 필요도, 나중에 쓸모를 증명할 필요도 없는 시간이에요.
기차 게임은 그런 시간에 같이 앉아 있으려고 만들었어요. 점수도 순위도 없어요. 창밖이 흘러가고, 졸아도 되고, 쓰고 싶을 때만 편지를 쓰면 돼요. 아무것도 안 하고 나가도 한 번 잘 다녀온 거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앉아 있는 게 어색할 수 있어요. 손이 자꾸 휴대폰으로 가고, 몇 분 지나면 일어나고 싶어져요. 그러면 일어나도 돼요. 다시 앉고 싶을 때 앉으면 되고요. 잘 쉬는 방법을 따로 익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곁에 누가 있다면 말없이 앉아 있는 것도 좋아요. 이야기가 끊겨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는 흔하지 않으니까요.
하루가 끝날 때 오늘 뭘 했는지 떠올려 보면 기억나는 건 의외로 큰 일정이 아니더라고요. 틈에 끼어 있던 짧은 장면이 오래 남는 편이에요. 신호를 기다리며 본 저녁 하늘이라든가, 컵에서 올라오던 김 같은 것들이요. 비워 둔 틈이 있어야 그런 장면도 눈에 들어와요.
이 글도 한 사람의 생각일 뿐이라 맞지 않으면 흘려보내도 돼요.
이 화면에서 잠깐 눈을 들어 보세요. 창밖이든 벽이든, 거기에 오늘 처음 보는 빛이 앉아 있을지도 몰라요.